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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칼럼

심리학자, 토론토대학교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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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8)-“우리가 지금 에덴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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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우리가 속한 사회나 자연을 유기체로 보고 우리가 유기체에 속한 지체로서의 기능을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발휘할 수 있게 될 때 어떤 기적을 우리가 낳을 수 있을까를 깨닫게 되면 예수님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모든 기적이나 이적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신화(神話)로 미루어 둘 수만은 없다. 


 21세기 과학기술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연의 모방이며 자연의 지혜에 의존하는 것이다. 과학이란 사람의 생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떠날 때 바로 볼 수 있는 진실한 모습의 세계, 그것을 과학의 세계라 한다. 


 인간의 몸이 무진장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고 세포마다 개인 전체를 대표하는 유전인자들로 채워져 있는 것과 같이 우주도 우주를 구성하는 만물들로 채워져 있고, 그 개체마다 우주 전체를 대표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개체와 전체가 서로 소통하며 한 몸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음을 받았고, 창조주 하나님의 숨, 성령의 지혜로 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낙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체의 요구와 환경조건이 일치될 때를 의미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요구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이후의 요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들의 마음이 비어있었을 때와 그들의 마음이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채워졌을 때의 에덴이란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간의 몸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인간은 하나님의 숨으로 숨을 쉰다. 인간의 몸이 곧 성전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란 본래 비어있는 것이어서 그 안에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또한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한 바로 그 세계 안에서 산다고 하면 어떤가? 


 과학자들은 인간이 우주의 일부로 우주의 법칙에 의하여 시공간적으로 통제를 받게 되어있다고 본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과학자들의 견해와 ‘인간의 몸이 곧 성전’이란 예수님의 말씀이나 자신을 포도나무, 사람을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 그리고 하나님을 포도원을 돌보시는 농부로 비유하신 말씀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인간이 자타나 내외나 선악이나 귀천이라는 관념 등 실제로는 우주 또는 전체에 속한 자신이면서도 전체로부터 분리된 것과 같은 망상을 일으키는 순간 그가 본래 빈 마음 그대로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만족스러웠을 것을 모두 잃게 될 것이란 것은 분명한 일이다. 


 기독교에서 보통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 때문에 기독교가 타력종교(他力宗敎)로 오해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너희 몸이 곧 성전”이라고 지적하신 것이나 “나는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라는 말씀에 의지한다면 기독교는 타력종교가 아니라, 자력종교(自力宗敎)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변하지 않고서 자신이 성전이 되거나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곧 예수를 영접함에 있다. 자신의 몸이 예수의 피와 살로 채워지는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태운 배가 갈릴리 바다에서 큰 폭풍우를 만났을 때 제자들은 깊이 잠들어 계신 예수님을 깨워 그들을 구해 주시기를 애원한다. 예수님은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후에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하셨다. 


 예수님이 뜻하신 믿음이란 예수 자신에 의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 자신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산더러 “저리로 가라!”고 하면 가게될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자신이 곧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는 빈 마음으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4. 선악과(善惡果)의 정체(正體)


 성서 어디에도 지금 우리가 본심이라고 믿는 마음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말씀은 없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대로 아담의 육체를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 안에 하나님 자신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생기를 얻게 하셨다고만 되어 있다. 지금 우리들이 본심으로 믿고 있는 이 마음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는 오직 아담과 이브가 그들에게 금지되었던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눈이 밝아졌다는 것이 있을 뿐이다.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셨는가에 대한 의문은 조금만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풀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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