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shon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69 전체: 224,160 )
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6)
jsshon

 

(지난 호에 이어)
 “오~ 미시스 ‘쏭’ 술을 못하십니까? 그럼 여기 세븐업이 있어요.” 여주인 미시스 ‘봔 루’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파란 병 하나를 들고 나왔다.


 “자 취해 봐.” 대가 긴 유리잔에 세븐업을 따르더니 얼음 두 덩이를 넣어서 건네주며 ‘훈’이 빙긋 웃었다. 


 “이건 마셔도 괜찮은 거에요?” 잔을 들고 머뭇거리자 곁에 서 있던 미스 ‘다스튼’과 미시스 ‘봔 루’가 동시에 호호호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이다 마시고 취하는 사람 봤어?” 여전히 놀리는 투였다. 얼굴이 빨개진 ‘숙’은 잔을 들고 얼른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어 미시스 ‘송’.” 닥터‘홍’의 굵은 목소리가 뒤에서 울리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반색을 하며 마주 떼어놓는 발길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거 뭐요 난 이거 ‘찐’ 인데 아주 독한 걸.” 닥터‘홍’이 숙의 잔을 들여다 보며 물었다.


 “세븐업이요 세븐업.” ‘훈’이 얼른 대답을 했다. 


 “그래? 여기 오면 술도 조금은 배워야 해요.” 그리고는 숙소가 어떠냐고 물었다. 


 “여기 오는 길에 트렁크 두 개 들어드리고 문 걸고 왔습니다.”


 “아 오늘 이사했나? 그간 어디 있구?” 


 닥터 ‘게일’댁에 같이 있었다고 하자 “복 많은 친구는 다르군. 세계만방에 공짜로 재워 주구, 먹여 주구 하는 친구가 있으니.”


 깜짝 놀라게 너털웃음을 웃던 닥터‘홍’은 다른 분들과 인사하러 가고 ‘숙’은 의자에 앉아 닥터 ‘비숍’ 부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이. 당신 옷은 걸을 때마다 구름 위를 사뿐사뿐 걷는 선녀의 모습이군요. 참 아름답습니다.” 미시스 ‘비숍’이 미소를 지으며 한복 치맛자락을 만져보았다. 이들은 부부 교수로 단 하나뿐인 아들이 MIT(공대)에서 공부하는데 수재라고 자랑이 대단하였다.


 처자랑, 자식자랑은 삼불출의 하나일 뿐 아니라 자랑이란 무조건 점잖지 못하다는 사상이 뿌리박혀 있는데, 중년이 훨씬 넘은 부부 교수들의 서슴없는 자식자랑은 아주 자연스럽게 들렸다. 


 벌써 마음속으로부터 ‘미국’을 이해하려는 착한 변환이 시작되고 있나 보았다.


 “여기 닥터 ‘라 안’이 오시는데 인사해야지. 키가 커서 구부정하고 이마엔 주름이 하나 가득인 닥터 ‘라 안’이 백발이 들러붙은 머리를 건덩이듯 걸어오더니 함박웃음을 크게 웃었다.


 앞니 한 개가 반쯤 썩어 까맣게 잘려 나간 게 언 듯 보였다. 몇 해 전 동경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 참석했던 ‘훈’이 닥터‘라 안’과 함께 귀국하였었다. 


생리학과 과장인 그는 연세의대와 공동연구과제인 해녀잠수생리실황 브리핑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숙’과 ‘훈’이 함께 서울시내 안내를 하며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 인사동 뒷길에서 손수레를 세워 놓고 오징어를 기계에 넣어 납작하게 눌러내는 작업을 한참 흥미 있게 관찰하던 그는 한국적 식품가공법이냐고 물어서 두 사람을 계면쩍게 만들었다. 계동 깊숙한 골목에 있던 한옥식당에서 교자상 가득히 차려온 음식들을 보고 그만 눈이 둥그레져서 이걸 다 먹어야 되느냐고 놀라던 그의 모습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하이 미시스‘쏭’ 여기서 만나게 되어 반갑군요. 뭘 좀 드셨습니까? 그러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소리도 없는 함박웃음을 입만 벌리고 한참 웃어댔다. 


-그 때 그 음식 다 못 먹어봤는데.. 가끔 그 나머지 음식들이 생각나지요. ‘훈’과 ‘숙’도 소리 내어 같이 웃었다. 


-그런데 미국 인상이 어떻습니까? 돌연 닥터 ‘라 안’이 물었다.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어제 ‘나이아가라’폭포를 구경했는데 굉장하더군요.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 벌써 ‘나이아가라’폭포를 보았습니까? 이건 주인보다 더 빠르군요. 난 몇 년 전에 거길 가보고 아직 못 가 봤는걸요. 그는 눈썹을 치키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제 보면 알겠지만 이 한 가지는 내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미국은 모든 면에서 스케일이 크다”는 것입니다. 사고가 나도 크게 나고, 사람이 죽어도 많이 죽고, 손해가 나도 엄청나게 크게 납니다. 힘과 힘이 맞닿는 곳이라 성장력도 파괴력도 비길 데 없이 큽니다. 물론 땅덩이도 크고 사람도 많고 모든 면에 있어서 규모가 크다는 것입니다.“ 


닥터‘라 안’의 표정엔 빈틈없는 노학자의 위엄이 그대로 서려 있었다. 그것은 편협한 자랑이 아니라 어쩌면 자랑과 부끄러움이 서로 상쇄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담담한 심정의 표현인지도 몰랐다. 바다건너 물 건너 수만리, 내가 밟아야 할 ‘미국’의 안내서였다. 


‘숙’은 오히려 엄숙해지는 마음으로 노학자의 조국 평을 귀 담아 듣고 마음에 새겼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