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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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믿는 자의 삶의 우선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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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3-34)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참으로 크고도 중요한 문제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는데 필요한 물품들을 얻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며, 그 때문에 진정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표까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먹을 것이나 입을 것들로 인해 염려할 필요도 없고, 걱정해서도 안 된다. 하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 알고 마련해 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양식과 의복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합당한 높고, 고상하고, 의미 있는 목표여야 한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받은 능력과 은사를 다 발휘하여 구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가르침은 주기도문에도 명시되어 있으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가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위한 간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보다 먼저라는 사실이다. 이는 “의식주”를 위해 염려하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구하라는 말씀과 일치함과 동시에 믿는 자의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태초로부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기 보다는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며 그들 마음속에 형성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다시 말해, 지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임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야 할 세계가 예수님이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이 나라는 하나님이 사랑과 자비와 은혜와 공의로 다스리시기에 그 곳에 살기를 원하는 이들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 8:28)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롬 12:2)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려야 할 참 평안과 기쁨을 맛보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첫 단계는 우리들의 삶의 원칙을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는 “세상의 기준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이들은 거하는 곳이 어디든 “천국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정과 직장생활은 물론 인간관계와 사업관계 등 사회생활을 총망라한 삶의 방식에 있어 천국백성으로서 손색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삶의 자세로 인해 세상 사람들과 대립관계가 형성될 경우가 종종 생긴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그로 인해 상호간에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는 자들은 힘으로나 숫자로나 월등한 그들에게 위축당하거나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온갖 핍박과 굴욕을 참으시며 끝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처럼(요 16:33) 그릇된 가치관으로 인해 잘못 선택한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진로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 믿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대원칙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세상 사람들이 믿는 자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헛된 욕망의 길에서 벗어나 참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해야 할 더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일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열어놓으신 구원의 문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복음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는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모두 “땅 끝까지 나의 복음을 증거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으로 그들의 복음서를 끝내고 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니”(행 1:8)이다. 모두가 그가 목숨을 바쳐 이루신 구원의 소식을 세계만방에 전하라는 예수님의 엄숙한 분부인 것이다. 


 그러기에 선교의 사명을 등한시하는 믿는 자들은 스스로 그들의 존재가치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원의 문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세계복음화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기본자세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믿는 자들의 충성과 헌신으로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이 전해질 때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건설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왕국의 일부일 뿐이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땅 위의 역사가 종식되고, “눈물과 걱정과 애통함과 사망”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존속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함은 물론 장차 그들이 들어갈 영원한 그 나라를 향해 힘차게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이 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로 다스려지는 “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산 위에 오른 무리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야 한다.”(마 5:6,10)고 하셨으며, “너희들의 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보다 나아야 하며”(마 5:20),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말라.”(마 6:1)하신 사실로부터도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려면 “하나님의 의”를 행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불의를 미워하시고, 정의를 사랑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가정과 직장에서는 물론 그들이 속한 단체나 사회나 나라에서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청조주시며,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사회 어느 곳에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억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켜 드려야 한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주의자대회에서 채택된 “믿는 자의 사회적 책임”의 한 구절이다. 전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이 믿는 자들이 행할 “하나님의 의”에는 교회 내에서의 “종교적인 의”와 더불어 교회 밖에서의 “사회적인 의”가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실천해야 할 “사회적 의”는 무엇일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 즉 불의 아닌 정의를 행하며, 압박과 억압을 배격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미움과 증오를 버리고 서로 사랑하며, 분쟁과 싸움 대신 평화를 추구하는 것들이 기독교인들이 실행해야 할 “사회적인 의”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원한 하늘나라가 이 땅 위에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살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가 평화롭고, 정의롭게 될 수 있도록 선하고, 정직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요악할 수 있다고 본다. 


 믿는 자들은 주어지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목적은 자신의 만족이나 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고전 10:31)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삶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겐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마 6:33) 이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하시며 “내일을 위한 염려”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하신다.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지키시며 인도해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영화롭고 찬란한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과 동행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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