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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bh2000

 
피아노
 
 

 


백수 처럼 자리만 보전하고 있다
하릴없는 건달 처럼 먹고 놀기를 몇년 째
이제 식솔들 볼 면목도 없거니와
전에 없던 불안감이 차츰 엄습해오는 거라
헐값으로 중고시장에 넘기지 않을까
전화벨 소리에 쿵쿵 심장이 두근거린다


 
종일 입 닫고 무겁게 앉아 있다
거실 구석에 처박힌  위기감  
내 몸 쓰다듬던 손길 뚝 끊어지고
건반을 두들기던 딸도 훌쩍 집 떠나니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몸 
오선지 위로  뛰어 다니던 음계마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글쪼글  지쳐 있다


 
피아노는 늙었다
우두커니 어둠을  바라보는 게 생이라면
건반과 건반 사이
연주 뒤편의 아다지오(adagio) 의 배역 
백수는 일단 희소성에 밀린다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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