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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POSTINO-파블로 네루다와 시쓰기
Byunchangsup

 

 

 지난 여름 22년만에 리바이벌한 영화가 있다. 1996년도 오스카상 외국어 작품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 : IL POSTINO : 우편배달부]가 그것이다. 원작 소설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영화한 작품이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이자 정치가이기도한 파블로 네루다 라는 실제 인물과 그가 시를 구상하며 지냈던 칠레 남쪽 해안가 조그만 마을의 우편배달부를 가공 인물로 등장시켜, 네루다의 시세계와 인간애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는 배경이 이탈리아 나폴리 앞바다의 작은 섬마을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네루다에게 매일매일 우편물을 배달하는 순진무구한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삶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쓰기와 삶


 네루다에게 부쳐오는 수많은 펜레터를 배달하며 마리오는 네루다에 관심을 갖고 그의 시를 탐독한다. 하루는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메타포(은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잠시 머뭇거 리던 네루다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그는 “비”라고 대답한다. “바 로 그거다.”라는 네루다의 말에 마리오는 그렇게 쉬운 걸 왜 어렵고 복잡한 메타포를 쓰는지 궁금해 한다. 그것은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고. 진부하고 상투적이며 직설적인 표현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네루다는 답한다. 


 그렇다. 문학으로서의 글쓰기란 그래야 하리라. 네루다의 말은 수사학적인 표현상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이지만 글쓰는 이에게 ‘진부하다’ ‘상투적이다’ 라는 평은 가장 치명적인 말이다. 남이 한 말을 되풀이나 하는 상투적인 글은 요즘같은 글의 공해시대에 일조하는 일 밖에는 아무런 의미도 감동도 없는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각으로의 글쓰기이리라. 남이 지나쳐버리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 남이 버리고 천대하는 것들을 보듬어 안는 마음, 그로 인하여 얻어지는 작은 깨달음 같은 것들을 독자와 함께 공유할 때에 감동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허나 어찌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일 포스티노


 마리오는 섬마을 여관집 질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랑을 시로 노래하기에 이른다. 사랑은 시를 낳고 지루하고 무의미했던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네루다는 다시 고국 칠레로 돌아가고, 마리오는 그와 함께 시와 인생을 이야기하며 지냈던 일들을 그리워하며 섬마을 해변가의 크고 작은 파도소리, 절벽의 바람소리, 심지어는 밤하늘 별들의 모습을 녹음하여 네루다에게 보낸다. 


 그러나 그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없고… 마리오는 실망한다. 세계적인 명성과 명예를 누리는 네루다에게 조그만 섬마을의 이름없는 우편배달부는 하찮은 존재였으리라.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가이기도 했던 네루다의 사상을 몸소 실현하는 마리오는 마침내 거리의 혁명대열에서 죽음을 맞는다. 마리오는 온몸으로 전 생애를 바쳐, 네루다의 시와 사랑과 그의 사상을 실천하며 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얼마 후 네루다는 다시 섬마을을 찾아오고, 마리오의 죽음 앞에서 오열한다. 심히 부끄러워 한다. 아니, 영화감독, 마이클 레드포드가 영화 속의 네루다를 부끄럽게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았다. 명예와 명성(그것들은 후에 얻어지는 결과일 수도 있지만) 혹은 지적인 허영심을 충족키 위한 글쓰기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감동과 진실


 실제의 네루다는 자연과 사랑을 노래한 많은 서정시를 남겨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준 20세기의 대시인이지만, 영화에서는 그 명예와 명성이 진정한 개인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외딴 섬마을의 보잘것 없고 이름없는 한 우편배달부의 일생을 통해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명제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허구의 글쓰기와 실제의 삶과의 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시인 안도현은 그의 짧은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우리들에게 준엄하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냐”고. 이 질문에 우리는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시쓰기와 실제의 삶에 대하여 그는 “시에다 삶을 밀착시키고 삶에다 시를 밀착가카는 일, 그리하여 시와 삶이 궁극적으로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실되고 감동적인 글이 된다고 말한다. 


 어찌 글쓰는 일뿐이겠는가. 말을 주업(?)으로 하는 정치가와 교육자와 목회자들이 그들의 말과 삶이 일치할 때, 우리는 그들의 말과 글에서 감동을 받는다. 글쓰기란 정말로 어렵고 두려운 작업이다.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될 것이다.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 수 없듯이. 

 

문학과 영화


 소설에서는 우편배달부를 등장시켜 네루다의 시 세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는데 성공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거꾸로 네루다를 조연으로 등장시켜 사회적으로는 보잘것 없지만 진실된 한 인간과 그 삶을, 이름없는 우편배달부를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이제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를 단순히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영상이라는 매체형식을 통해 원작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또하나의 예술장르로 그 자리를 굳건히 한 지 오래다.


 밤하늘의 둥근 달을 쳐다보며 게임용 축구공을 입에 문 애인의 요염한 자태를 떠올리는 장면에서 “공과 달”의 대비라든가, 해변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혁명군중들의 함성소리를 오버랩시키는 장면은 각각 시각적, 청각적인 영상처리로 시의 메타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족으로, 마리오 역으로 분한 마씨모 트로이찌라는 배우는 자신의 영화도 보지 못하고 마치 영화 속의 마리오와 같은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써 더 진한 감동을 남긴다. “우리의 친구 마씨모에게”라는 마지막 자막과 함께, 네루다의 시, <시>의 첫 련(Stanza)이 떠오르며 영화는 끝난다. 

 


 그래 그 시절이었을거야. 시가
 나를 찾아들었어. 허나 모르겠어.
 그게 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로 부터인지 강으로 부터인지.
 언제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도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고,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튼 어느 거리에서 나를 불렀어.
 밤의 나뭇가지에서
 불현듯 색다른 어떤 것들로 부터.
 격정의 불 속으로부터 불렀어.
 때로는 홀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얼굴없는 나를
 그게 어루만져 주었어.

 

 ~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서 

 

 

 

(편집자 주: [캐나다 문학] 18호에 실린 글을 일부 필자 수정으로 재수록합니다.)

 

 

  

변 창 섭


 1974년 캐나다로 이주, 건축사로 일해 왔다.
 1980년대 한국일보, 민중신문에 작품발표
 1990년대 [시둥지] 동인으로 동인집 발간
 1994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선에 이어
 1997년 [현대시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잔이 잔되게 하라> 1994
 시해설집 <현대시 이해> 1998
 그밖에 동인시집 다수가 있다.
 2008년 민초해외문학상 초회 수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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