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신문을 펼치다가 커다란 기사 제목 하나에 눈길이 머물렀다. 한동안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해 답답함이 밀려왔다. “1%대 주담대 갈아타기, 홈피에 첫날 8만 명 몰려”
주담대가 뭐지? 내가 모르는 어느 대학교 이름인가? 아니면 줄임말, 합성어? 궁금증을 풀기 위해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서민형 안심 전환 대출은 기존 변동 금리 또는 준고정 금리 주택 담보 대출 이용자가 최저 1%의 저렴한 고정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상품이다...” 결국 주담대는 주택 담보 대출의 줄임말 신조어였다. 주담대란 용어가 우리나라 3대 일간지 중의 하나인 매체에 대문짝만한 제목으로 사용될 정도면 그 단어 자체가 상당히 인지도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 같았다. 내가 시대에 뒤떨어져도 많이 뒤떨어졌다는 소외감마저 스쳤다.
그러다가 그 어두운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데 제일 먼저 아내가 손을 내밀었다. 그 말을 처음 들어본단다. 주위 사람들 몇 명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말이라고 했다. 골목을 벗어나 큰길로 들어서자 점차 안도감과 함께 당혹감 같은 것이 올라왔다. 도대체 우리나라 말과 글을 어디까지 망치려고 저러는 걸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야말로 말이 말같이 쓰이는 건지 잘모를 정도로 말이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구 만들어낸 말장난에 정말 말문이 막혔다. 요새 자주 통용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 등은 차라리 애교로 봐줄만한 정도였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나 '워나벨(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같은 말은 도저히 알아들을 재간이 없다. 특히 '워나벨' 같은 표현은 좋은 직장의 조건으로 중요시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게보면 주담대 같은 신조어는 또 아무 것도 아닐 지 모르겠다.
'자만추'는 무얼 말하는 걸까? 이번에는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에서 이 말을 만났다. 오락 프로그램 출연진 중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쓰니 거기 나오는 출연자 중에 그 뜻을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스런 만남 추구란다. 흔히들, “그 사람은 내 취향이 아냐”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새로운 이성 친구를 만나는 단계에서 쓰이는 줄임말인가보다. 공영 방송에서 이렇게 신조어를 남발하다 보니 그 말들이 신조어인지 신종 언어인지, 정식 언어이지 아닌지 조차 종잡을 수 없다. 새로운 줄임말이라는 게 결국 누가 먼저 그 말을 만들어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류 바람을 타고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한글을 배우겠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반갑게 듣는 요즘이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닿소리 'ㅍ'과 'ㅊ'으로 형상화한 엠블렘을 사용한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을 만든다는 취지에서였다고 한다. 'ㅍ'이 상징하는 의미는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 사람들의 화합, 즉 천지인이다. 'ㅊ'의 의미는 눈과 얼음, 그리고 스포츠 스타들을 말한다. 올림픽 출전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엠블렘 티셔츠가 유행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연초에는 뉴욕, 밀라노, 파리 등지에서 한글 옥외 광고가 실시되었다는 뉴스도 들었다.
올해로 573돌을 맞는 한글날 노래를 이제 나는 고집스럽게라도 3절까지 다 옮겨볼 생각이다;
1절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새 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2절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3절
한 겨레 한 맘으로 한 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
바른길 환한 길로 달려나가자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구구절절이 새록새록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자긍심이 절로 든다.
'그녀'라는 말이 외국식 표현에 근거한 것이니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한다는 국어 학자의 주장이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는 지인이 있다. 표준말의 정의가,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원칙을 근거로 그리 반론을 제시했다. 똑같은 이유에서, 이제는 표준말의 기준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수히 발생하고 범람하는 신조어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말들도 위 세 가지 원칙에만 맞으면 표준어로 삼아야 한단 말인가? 갈릴레오가 얘기한, “그래도 지구는 돈다”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는 방송이나 신문에서 한글사랑운동을 제대로 전개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소위 글 쓰는 사람들부터 앞장서서 우리 말을 잘 써야 할 것이다. 그것은 책무이자 사명이다. 독초처럼 자라나는 언어 유희성 말들을 지금부터라도 뽑아내야 한다.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에서 근무하던 시절, 바로 코앞에 철책선이 가로 놓여 있었다. 우리말을 망가뜨리는 요소요소에 그런 철책 경계선이라도 쳐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밤에는 우리말에게 연애 편지라도 한 장 쓰고 싶은 심정이다.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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